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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리들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난다. 일찍이 나를 머리만 남겨두었던 종언 기사가 마치 개미처럼 보였다. 개미처럼 짓밟지 못하는게 정말 아쉽다.
육체의 감각이 없다. 내게 있는 것은 고통뿐이었다.
일찍이 내가 죽음 직전에 맛본 영혼이 불타는 듯한 격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극상의 고통만이 의식을 삼키려든다.
나는 꼬이는 혀를 질타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으……센, 리, 내, 밑에――”
반응을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몸을 떨고, 폐에 공기를 담아, 전력으로 포효한다.
몸이 파열할 것 같았다. 자신의 포효를 소리로 인식할 수 없다. 공기의 진동이 폭발하듯 지하미궁에 휘몰아쳐, 루프리들이 크게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견고한 지하미궁도 거대한 괴물은 당해낼 수 없다. 라이넬도 자신의 성을 간단히 파괴했다.
와르르 무너져 내린 파편이 몸에 부딪히지만, 일찍이 누워만 있던 나라면 죽어버렸을 그것도,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먼지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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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에 몸을 맡긴다. 땅을 박차고, 앞다리를 크게 들어 바로 위를 향해 뛰어올랐다.
§ § §
오랜 세월 그곳에 유유히 서 있던 성이 떨린다.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가 걸려 있던 벽과 기둥도, 비바람으로 인해 열화되어 있었다. 공기는 차갑고,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모든 것은, 인간들 탓이다. 위대한 죽은 자의 왕이 군림하던 성은 인간의 손에 떨어지고, 폐허로 변했다.
일찍이 인마를 막론하고 겁먹었던 왕의 군세는 사라지고, 이미 동화 속 이야기가 되었다.
고성의 가장 깊은 곳. 일찍이 옥좌의 방이 있던 곳에, 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금으로 장식된 검은 로브. 깊이 눌러쓴 후드.
손에 쥐어진 긴 지팡이는 신관이 들고 있는 석장과 비슷하고, 달려 있는 칠흑 결정의 장식에서는 어딘가 괴이한 분위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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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소매에서 뻗어나온 손. 지팡이를 잡는 그 손가락은 까맣게 미라처럼 메말라 있었다.
인영이 소리를 낸다. 메마른 목소리는 격렬한 진동 속에서 신기하게도 잘 들렸다.
“왕이여……드디어, 이때가――왔습니다. 아아……오랜, 시간이었습니다.”
석장이 마루를 툭 때린다. 마력이 무너질 뻔한 진을 돈다.
문득, 후드가 벗겨졌다.
드러난 머리는 어둠에 녹을 듯한 칠흑을 띠고 있었다. 메마른 검은 피부에 뻥 뚫린 안와 속엔 붉은 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뼈가 아니다. 그렇다고 피가 통하는 몸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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